어제 고등어회를 먹고 숙소에서 해수탕으로 땀을 쭉 빼고 나서 잤더니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다. 책 좀 보려고 왔지만 책을 잘못 가져와서 머리만 아프고 밖은 바람이 너무 세서 뭔가 하고 싶지는 않고 여행 와서도 그냥 그렇다. 점심이라도 좀 제대로 먹고 기분을 전환해 보자 하여 어제 소개받은 글라글라 하와이에 들렸다.
이태원에 가면 많이 보이는 하와이안 스타일의 매콤한 해산물찜을 제주에서 파는 곳인데 "글라"는 제주도 말로 "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방언과 외국지명을 합하였는데 입에 짝짝 달라붙는 재미난 가게 이름이라 생각된다.

블로그를 보니깐 성수기에는 줄 서서 먹는 곳이라는데 코로나에 겨울이다 보니 사람이 없어서 휑하다. 그나마 유럽에서 온 것 같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쉬고 있다. 그걸 보니 자전거 가져와서 한 바퀴 돌걸 여기에만 있으니 심심하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든다.


이 집의 주 메뉴는 하와이안 해물찜이다. 근데 이게 2인 메뉴인지라 고민이 좀 되었는데 먹다가 남으면 싸가던지 두고 가야지란 생각으로 그냥 시켰다. 요즘 살이 부쩍 쪘는데 이렇게 2인 메뉴도 꾸역꾸역 다 먹으니 안 찔 수가 없다.
하와이를 컨셉으로 한 가게답게 맥주도 빅 웨이브가 있다. 가격은 서울보다도 비싸지만 분위기도 낼 겸 같이 주문했다.





자전거 타는 애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는 도중에 음식이 나왔다. 비닐장갑을 양쪽에 끼고 나무망치로 딱새우의 몸통을 통통통 친 뒤 머리를 빼고 껍질을 벗기면 딱새우의 살이 나온다. 양념이 매콤하면서도 달아 나 같은 애기 입맛이 먹기에 딱 좋다. 새우는 그냥 먹으니 비릿한 맛이 났는데 소스에 슥슥 먹으니 괜찮다. 소스를 접시에 두세 스푼 퍼놓고 소스에 레몬을 뿌려서 먹는 걸 추천한다.
새우 머리가 포인트라고 하는데 내 입맛에는 텁텁하다고 할까 쓰다고 할까 '왜 여기가 맛있지?' 하는 맛이다.
망치를 쓰다보니 소스가 여기저기 튄다. 흰옷을 입고 가면 백 프로 먹은 거 자랑하게 되니 어제 입은 옷을 입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몇 시까지 영업하는지 모르겠지만 맥주나 탄산음료 없이 먹으면 너무 생각나게 하는 맛이다. 특히 맥주가 너무 궁합이 잘 맞기 때문에 운전을 안 한다면 꼭 맥주와 함께 먹길 바란다.
조금 아쉬운 것은 양. 좀 덩치가 있는 남자면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처음나올때는 "와 양 많네~"라고 좋아했지만 소라 껍데기 덜어내고 새우 하나씩 각개 격파하다 보니 실제로 먹는 양은 훅 줄어든다. 두 명이 와서 이거 하나만 먹기는 좀 애매할 것 같고 하나 작은 사이드 디쉬를 주문해야 할 것 같다. 근데 그러자니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사는 사람들이야 이태원가면 "보일링 크랩"도 있고 이런 류의 음식점은 찾으면 갈 수 있어서 신기해서 갈만하지는 않다. 여기 장점이라면 여행 중에 회랑 국수에 질린 혓바닥에 새로운 맛을 줄 수 있고 수입 해산물이 아니라 제주에서 나는 딱새우를 다른 조리법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로 서귀포에 갈 때마다 점심에 중간에 한 번은 들려서 먹어볼 것 같다.
다들 독특하다고 하지만 비슷비슷했던 식당과 카페가 많은 제주도에서 상당히 컨셉을 독특하고 재밌게 잡은 가게를 하나 발견한 것 같다.
9개월이 지나고 다시 방문
이번에도 해물찜을 주문했다. 그런데 가격이 5천원이나 올라 43000원이다. 딱새우 가격이 올랐을까?
오늘은 날이 좋아 야외에 나와서 먹었다. 딱 두테이블 밖에 없는데 운이 좋게 우리 차례에 자리가 생겼다. 야외에 자리가 생긴다면 꼭 여기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차들이 지나다니기는 하지만 서울서는 느끼기 힘든 개방감과 여유로움 속에서 맛있는 해물찜을 먹을 수 있다.



다시 방문하고 볶음밥과 피시앤 칩스를 주문해서 먹어봤다. 결론은 해물찜이 최고!

